『암캐』의 원제 la perra는 암컷 개를 의미하며, 여성에 대한 멸칭으로 쓰이기도 한다. 실제 이 소설은 여성이라는 성, 모성,
채워지지 않는 욕망, 상실, 연대와 배반, 수치와 죄의식, 본능적인 고독과 폭력, 그럼에도 결코 소진되는 법 없이 순환하는 사랑을 한 여자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중년 흑인 다마리스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의 판잣집에서 어부 남편 로헬리오와 살고 있다. 이곳은 콜롬비아의 무역거점이자 지구적으로 중요한 생태지역이지만, 거주하는 아프리카계 후손과 토착민에 대한 구조적 인종차별로 인해 콜롬비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에 속한다. 부부의 애정과 열정은 아이 갖기의 실패로 막을 내린 듯 보인다. 어머니가 되지 못한 채 희망을 잃고 “시든” 다마리스는 외톨이 개를 입양할 기회 앞에서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한다. 동물과의 이 강렬한 관계는 다마리스가 그간 염원해온 모성을 실현할 기회이자 실패할 위기로 구체화된다.
안전하게 길러진 적 없는 다마리스의 실존은 그녀에게 하나의 사건과도 같은 존재 암캐 치를리를 맞닥뜨리며 더욱 쓰라리고 강렬하게 빛을 발하지만, 온순하지 않은 이곳 자연과 날씨처럼 예측하거나 이해하기 힘든 것으로, 때로는 폭력과 가까운 것으로 그려진다. 목가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콜롬비아의 야생적인 풍광만큼이나 다마리스의 심리적 초상은 변화무쌍하고 위태롭다.
『암캐』의 간결한 문장 속에는 감히 더 요약할 수 없는 감정적인 폭풍이 도사린다. 우회하는 법 없는 문장이 사나운 빗방울처럼 계속되는 사이, 읽는 이의 맥박 역시 속도를 더하게 된다. 한편 이 책에 등장하는 중남미의 다채로운 나무들, 동물, 곤충들, 우리는 식재료로 쓰지 않는 과일, 이 지역의 독주와 민속요리, 이곳의 전통적인 건축양식을 떠올리는 것도 이 책 읽기의 피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 120쪽
○ 110 × 182 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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